오래된 여행 – 카불의 뒷골목, 아프가니스탄

대낮이라 별 생각없이 돌아다닌 카불 시내. 길이 복잡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방향을 잃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카불이라는 곳이 얼마나 안전한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난 되도록 사람들과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골목길 초입에 있는 매점에서 콜라를 마시고는 했다. 외국인이 콜라를 마시면 동네 한량들이 죄다 몰려나와 같이 논다. 그러면서 묻는다. 각색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간다.

“어디가냐?”

“골목길 돌아다니는데..”

“총은 갖고 다니냐?”

“총? 그런거 없는데”

“쫄긴, 괜찮아. 여긴 내가 다 아니까. 문제 생기면 나한테 연락해…

그나저나 콜라나 하나 사주라”

뭐 대략 이런 식이다. 간혹 운이 좋으면 매점 아저씨랑 식사를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친절했고, 나에 대해 궁금해했다. 특이하게도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동질감이 있었고,
아프간의 민족 중 하나인 ‘하자라’를 닮았다고 재밌어했다.

맨 오른쪽 아저씨는 나의 론리플래닛을 한참 들여다 보셨다. 아래에 있는 사진은 아흐마드 샤 마수드. 이 사람을 모르고, 아프간에 들어갔던게 얼마나 후회됐는지 모른다.

가이드북이 아니라, 그 나라 역사를 알고, 지도자를 알고, 문화를 알아야 보다 풍성한 여행이 된다는 것을 알게해주었다. 그날 카불 시내를 뒤져 아프가니스탄 현대사에 대한 책을 샀다.

1952 ~ 2001

그는 2001년 9.11 테러가 나기 하루전에 암살당했다. 1979년 시작된 러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표적인 아프간의 무자히딘이었다. 난 이 사진을 보면서 이 사람이 무자히딘이냐, 탈리반이냐는 무례하기 그지없는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의 아프간 사람들은 탈리반을 아주, 매우, 극단적으로 증오한다. 그는 타지키스탄 계통의 북부 아프간 출신으로 판지셰르 계곡을 근거지로 소련에 대항해 싸웠다. 그래서 ‘판지셰르의 사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받는 그는, 어찌보면 파슈툰을 비롯한 오든 정치 세력에게 가장 골치아픈 인물이었고, 그건 새롭게 등장한 탈리반 / 알 카에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결국 카메라맨으로 위장한 자폭테러범에 의해 폭사했고, 다음날 뉴욕의 쌍둥이 빌딩도 무너졌다.

동네 슈퍼마켓. 부르카를 쓰는 (탈레반의) 전통은 유지되고 있었지만, 남자 가족과 동행하지 않은 여성들은 제법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구 사진을 찍거나, 말을 걸거나, 신체적 접촉이 생겨서는 안된다. 언제 누가 나타날지 모른다.

전형적인 카불의 골목길. 커다란 독이 집집마다 하나씩 보이는데, 정확히 뭘 위한 물건인지는 잘 모르겠다. 대체로 안은 비어있었는데, 만들면서 건조시키는 것인지 무언가를 저장하기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바미얀이나 헤랏 같은 도시에서는 보지 못했다.

카불은 참 건조한 도시다. 아직 전쟁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고, 오랜시간 내전으로 인해 황폐해져 있었다. 몇몇 NGO나 국제 기구 관계자, 군인들이 눈에 보이는 외국인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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