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잔 사태 10주기

[개인적으로 시간날때마다 정리하기 위한 포스팅입니다. 완성된 글도 아니고, 특정 논점을 가진 글이 아니니 굳이 읽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2015. 08. 15.]

오늘은 5월 18일이다. 광주에 대해 생각해야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나는 우즈베키스탄의 도시 ‘안디잔’이 떠오른다. 미디어에서 다뤄지지 않는 중앙아시아의 한 도시이다. 이 곳에서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2005년 5월 13일, 수백 명에 달하는 평화적 시위자들이 우즈베키스탄 정부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학살 당했던 사태가 발생했다. 내가 타쉬켄트행 비행기표를 구매한지 1주일만이다. 난 병역특례가 끝나고 복학하기 전까지 실크로드의 역사가 ‘살아숨쉰다고 하는’ 중앙아시아 + 중국 서북부 + 서남아시아를 여행하기로 계획했다.

1.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대략의 스토리는 이렇다. 5월 10일, 안디잔 시의 중심에 위치한 광장에서 평화적 시위 발생. 12일, 시위대의 교도소 점거와 재소자 수천 명 시위에 가담, 시청사 점거 및 및 정부관리 구금 등 무력시위로 확산. 13일, 정부군의 투입으로 인한 시위 진압으로 유혈사태는 종료. 14일, 간헐적 시위 발생 및 진압. 너무나도 신속하고, 강력하다. 어떠한 대화 시도도 없었으며, 평화적 시위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대응도 없었다. 이 때는 2005년이다. 그루지아의 장미 혁명(2003년 11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2004년 12월), 키르기즈스탄의 레몬 혁명 (2005년 3월)이 우즈베키스탄의 독재자 카리모프를 압박했을 것이다. 특히, 키르기즈스탄은 안디잔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 국가다.

2. 왜 일어났는가?

사실 이게 좀 모호하다. 최소한 내가 이해하기에는 미디어의 설명이 매우 간소하다. ‘안디잔 지역 이슬람 기업인 23명을 헌법위반과 이슬람 과격단체 소속 혐의로 체포하였고, 23명의 재판 회부를 계기로 이슬람교 신자가 다수인 안디잔 주민들이 종교탄압이란 이유로 2월부터 간헐적 시위가 이어져왔다’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라는 것이다. 한겨레 보도 (링크)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3일 시위대 규모가 계속 불어나면서 성난 군중이 자동차를 불태우고 일부 경찰의 무장을 해제하는 등 과격양상을 띠기 시작했으며 일부는 시 청사를 점거한 채 여성과 어린이들을 내세워 정부군과 대치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카리모프 대통령은 13일 직접 내각을 이끌고 안디잔으로 가 협상을 시도하는 한편 대규모 병력을 5천여명의 시위대가 집결한 안디잔 동부광장에투입, 사태 확산에 대비했다. 그러나 시위 주동자들과 정부 간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오후 6시부터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우즈베키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1991년 8월 31일 이전인 90년 3월 대통령으로 당선된 카리모프는 안디잔 사태가 일어난 2005년까지 장기집권 중이 독재자이다. 이 글을 쓰는 올해가 2015년이니, 무려 25년간 대권을 쥐고 있다는 뜻이며, 더욱 놀라운 점은 올해 3월에 있었던 대선에서 90% 이상의 득표율을 보이며 재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번이 4선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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