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연말부터 중국을 오갔고, 팀원 중 일부는 다양한 이유로 재택근무를 한다. 기왕 재택을 한다면 규칙을 만들고 싶어, 간단하게 정했다. 기본적으로 우리 회사는 일주일에 하루씩 재택 근무를 한다. 보통은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재택 근무를 한다. 1년 넘게 이어온 재택 근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 개별 커뮤니케이션은 포기하자.
기본적으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은 포기하는게 좋다. 아무리 다양하고, 효율적인 툴을 사용하더라도 원격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불편하다. 보통은 행아웃 또는 슬랙으로 대화를 하는데, 대화가 오고가는 시간을 합치면 30분은 쉽게 지나간다. 게다가 ‘대화 대기 시간’이라는게 있다. 구두로 전달한다면 5~10분에 끝날만한 얘기들도, 메신저를 통하면 달라진다. 말을 걸어놓고, 상대방이 답변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온전히 다른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결국 비동기로 처리되는 일들에 대해 사전 합의가 끝나고, 각자 해야할 일을 처리하면서 Github / Trello / Slack 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 최선이다.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을 바라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팀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또는 사람들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
2. 재택 근무일을 맞춰서 진행하자.
현재는 어느정도 정착이 되었지만, 재택 근무 초기에는 날짜를 유동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누가 언제 재택을 하는지 늘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 경우,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계획하기 어렵다. 7명 중 3명이 없는 상황에서 회의를 한다. 그러면 결국 한두명은 그 내용을 모르고 넘어간다. 기왕 재택을 할꺼면 되도록 같은 날 하는게 낫다. 결과적으로 위플래닛은 ‘모두가 참석하는’ 회의는 없어졌다.
.
3. 생산성 향상 같은 생각은 하지 말자.
경험적으로 내린 재택 근무에 대한 결론은 ‘집이 먼 사람을 위한 배려’다. 출퇴근 시간이 한 시간 이상이라면, 이는 분명한 스트레스다. 출근 시간이 10시건 11시건 상관없이, 출퇴근을 위해 2시간 이상을 허비한다면 육체적, 정신적 타격이 크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많다는 얘기다. 재택 근무는 이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옵션이다. 다만, 재택 근무를 통해 창의성이 향상된다거나, 생산성이 높아진다거나 하는 무리한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출퇴근 시간을 줄여’ 방전되는 체력을 최소화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재택 근무의 목표다. 또는 지방이나 해외를 나가야할 상황이 생길 경우 ‘휴가’가 아니라 ‘재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인 팀원이 휴가차 집에 다녀올 경우, 일주일의 휴가가 아니라 한 달의 재택 근무 옵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재택 근무를 한다는 것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본다. 반대로, 일하기 어려운 다양한 상황을 줄이려는 노력이라고 본다.
.
4. 여러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좋은 연습인 것은 맞다.
작년 연말부터 나를 포함해 팀원 중 일부는 자주 출장을 다녔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해외를 오가며 일했다. 다행스러웠던 점은 우리가 오랜시간 재택 근무를 통해 원격으로 일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중국에 있다는 것이 주는 거리감은 사무실 앞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대화는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서로간의 업무 공유 역시 원격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매주 월요일마다 팀 회의를 하고, 수시로 미팅을 해서 구두로 의사소통하는 팀이었다면 최근 6개월이 힘들었을거라 확신한다.
.
5. 그래도 몇 가지 아주 명확한 룰은 필요하다.
아직도 재택 근무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암묵적인 룰은 이렇다. (물론 다 지켜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택 근무 시 메신저에 대한 Response 타임을 30분 이내로 하자’. 이게 전부다. 그 외에 하나 정도가 있다면 슬렉에 Online 되었는지 확인해보는 정도다.
.
재택 근무로 인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별로 할말은 없다. 다만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예를 들어 집이 지방이고, 서울에서 일하는 경우 명절에나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바꿀 수는 있다. 원한다면 집에 내려가 일주일이나, 한 달 정도 일하고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타트업이 팀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건 많지 않다. 원하는게 있을 때 ‘팀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그걸 할 수 있도록 해주는게 전부다.
.
기타 등등
#1. 재택 근무를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 부분도 고민이 필요하다.
#2. 재택근무를 하는 팀원 입장에서 재택 근무가 어떤 효과/이슈가 있는지 아직 잘 모른다.
예를 들자면 ‘출근 시간, 퇴근 시간’ 이슈와 비슷한 현상이 생길지 의문이 든다. 즉, 출근 시간을 지키자고 얘기하려면 정해진 퇴근 시간이 지켜져야 의미가 있다. 반대로, 출근 시간이 자유롭다면 정시 퇴근이 ‘눈치’보일 수 있다. 재택 근무를 선택한다는건 집 또는 카페 등에서 일하겠다는 의미다. 결국 생활 공간속에서 일하는 ‘습관’이 생기고, 일과 생활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메신저로 대화하는게 일상적이라면, 저녁 시간이나 주말/휴일에도 메신저로 서로 대화하게 된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3. 다른 회사는 어떤 방식으로 재택을 진행하는지 아직 모른다.
최근에 만난 한 회사는 일주일에 하루만 사무실에 모인다고 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재택 근무를 하고, 업무 관리는 Trello/Asana를 통해서 진행한다고 했다. 흥미로웠던점은 개별 Task 당 예상 소요 시간을 미리 정해놓은 다음 그 날 처리한 일을 Completed 처리하면, 결국 하루동안 ‘실제로’ 일한 시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진행하면 하루 ‘일한 시간’이 4시간이 되기도 하고, 1시간이 되기도 하니 서로서로 자극이 된다고 했다.
.
2018년 1월 업데이트.
작년 1년 동안 점진적으로 재택 근무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한 두 사람의 예외를 제외하고, 재택 근무는 원칙적으로 사라졌다. 언젠가 다시 도입하게될 날이 올 것 같지만, 지금 당장은 아닐 것 같다.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이전에는 나와 5 ~ 6명의 팀원이 1:1의 업무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어디에서 일하든 나와 1:1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면 큰 이슈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각 파트별로 시니어/주니어 조합이 생겼고, 진행하는 내/외부 프로젝트도 늘어났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일하는게 확실히 효율적인 단계에 왔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입장이고) 실제로는 한 두사람이 보여준 좋지 않은 사례가 작년도에 있었고, 반대로 모든 팀원이 사무실에 앉아 협업을 진행했을 때 보여준 좋은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 밖에서 근무할 때 발생하는 리스크를 컨트롤하는게 너무 힘들었고, 명확한 패널티 구조가 함께 만들어지지 않는한 재택은 중단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3-4년 이상 유지해온 회사의 주요 근무 방식 중 하나가 사라졌다.
.
2018년 3월 업데이트.
누군가 나에게 재택 근무를 묻는다면 비교적 명확하게 나의 의견을 얘기할 수 있다. 이제서야 말이다. 정리하면 이 정도이다.
- 1) 재택 근무를 원하는 직원이 있는기?
- 2) 재택 근무를 통해서만 그 직원이 일할 수 있는가?
- 3) 그 직원은 대체 불가능한 직원인가? 또는 명확히 회사에 이익이 되는가?
만약 1, 2, 3 모두 ‘그렇다’면 그 사람은 재택 근무를 시작하되, 장기적으로 ‘풀타임 출근’이 가능한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만약 1, 2가 ‘그렇다’하더라도 3이 ‘아니’라면 생각해야할 부분이 많다. 3이 ‘아니’라는 얘기는 그 직원이 퇴사하더라도 회사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재택 근무를 허용해서까지 그 직원이 회사에 남을 이유가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몸이 떨어져 있으면,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스스로 긴장감과 책임감을 유지하면서 재택 근무를 할 정도의 사람들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