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많은 전쟁 영화들이 있고,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스토리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각 전장은 그만의 색깔을 지닌다. 그 중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독보적이다. 육군이 중심에 서지 않은 첫 번째 현대전이자, 알렉산더 시대부터 이어져오는 전쟁의 역사를 지닌 거친 부족민들과, 나무한그루 없는 이질적인 대지,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그 어느 곳도 아프가니스탄 같지 않다.
#2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전은 ‘제 9중대’에서 시작한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람보3’가 있지만, 이건 전쟁 영화로 분류하기 애매하다.) Mi-24와 스팅거, 각종 기계화 차량에 열광하다가도 ‘칸다하르’와 ‘연을 쫒는 아이’를 보며 그들의 굴곡진 삶에 공감한다. 하지만 결국은 ‘론 서바이버’나 ‘레스트레포’ 같은 총싸움 스토리로 귀결된다. 그 중간쯤에 위치한 영화가 ‘카불 익스프레스’와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정도 되겠다. 절대적인 무질서와 개개인이 지닌 처절한 경험, 그리고 냉소적인 유머까지 매우 자연스럽게 섞인다. 명확한 전선이 형성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모두를 대상으로 처절하게 싸워온 공간이 아프가니스탄이다. 그만큼 다양한 스토리가 개인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3
눈치챘겠지만 위스키(W), 탱고(T), 폭스트롯(F)는 WTF를 의미한다. 그렇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로 그 뜻이다. 혼돈과 무질서, 무한한 자유가 섞여있는 그 곳은 인간이 지닌 욕망을 그대로 분출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이 현실이 정상으로 보인다’는 주인공의 대사는 결국 WTF의 다른 말이다. 비행기 한 번 타면 뉴욕의 번화가로 날아갈 수 있는 기자이지만, WTF을 외치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고 싶지 않다. ‘여자로서의 매력을 평가한다면 뉴욕에서 3점, 아프간에서는 10점, 다시 뉴욕에서는 3점’이라는 얘기다. 인도나 남미를 여행한 여성 여행자들의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있다는건 안다.) 얘기와 유사하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저널리스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전쟁 이야기라기보다는,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여성 기자의 ‘좌충우돌’ 적응기에 가깝다. 결국 오락 영화란 얘기다.
#4
그래도 몇 가지를 알고보면 재밌다. #칸다하르, #부르카, #바닥샨, #헬만드, #탈레반 정도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다면 영화는 좀 더 풍부해진다. 왜 칸다하르가 위험한지, 부르카를 쓴다는건 어떤 의미인지, 왜 바닥샨으로 가고 싶어하는지, 왜 탈레반과 만나고 싶어하는지 등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04~2006년은 상대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이 안정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카불에서 헤랏까지 이어지는 중앙+북부가 안정되고, 탈레반의 세력은 남부 칸다하르에 집결한 때이다. 특히 카불에서는 탈레반의 지배가 종료됨에 따라 일부 여성들은 부르카 없이 몇몇 관공서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카불 공항에서 비행기표파는 사람 중에 부르카를 쓰지않은 여성들도 보았다.) 카불에서 일하는 외국인 기자들은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거주했고, 해가 떠있는 동안은 여느 도시처럼 활기차게 움직이는 곳이었다.
#5
결론으로 돌아와보자. (사실 영화 하나보고 무슨 결론이 있겠는가?) 더운 여름날, 더 덥고 건조하고 무질서한 배경과 그 속에서 적응해가는 한 기자의 스토리는 적절하다. 맥주 한잔 들고 볼만한 영화다. 관심있다면 영화를 계기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검색해봐도 좋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