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연휴와 함께 10주차를 맞이했다. 많이 자랐고, 아프지 않고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몸무게는 두 배가 되었고, 얼굴도, 몸도 두 배 이상 커졌다. 이제 눈을 뜨고 사람을 바라보고, 나와 아내, 장모님은 확실히 알아본다. 신기할만큼 놀라운 일들이다. 투정도 심해졌고, 울음소리도 커졌지만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 잘 먹고 난 후에 짓는 ‘충분히 먹었으니 좀 자야겠다’는 표정은 부모가 된 사람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10주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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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정리
#언제가_좋을까
임신과 출산, 육아는 과연 언제하는게 좋을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난 ‘남편과 아내가 모두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난 후’가 현실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얘기를 하려는건 아니다. 출산과 임신, 육아 기간 동안 본인의 스케쥴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퇴근 후 저녁 약속이나 회식에 가지 않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오전 또는 오후 반차 정도는 요령껏 쓸 수 있는 상황이면 좋겠다는 것이다. 인생에 단 한번 밖에 없는 이 기간을 술과 야근으로 채우긴 아쉽다. 그리고 대략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비슷하게 임신과 출산, 육아를 시작하는 친구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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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는_어떤걸로
- 침대 : 바퀴달린 침대는 신의 한 수
- 아기옷 : 수면 잠옷은 매우 효과적, 그 외의 옷은 질보다 양
- 유모차 : 기왕이면 절충형, 집에서 사용해도 매우 쓸만함
- 공청기 : 살 때는 고민되지만 성능차는 못느낌
- 가습기 : 겨울에 적정 습도 유지하려면 2대 이상 필요, 생각보다 성능 차이 큼
- 젖병 소독기 : 마음의 안정감을 위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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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10주 정도 지내보니 육아를 위해 가장 중요했던 구매는 ‘건조기’와 ‘무선 청소기’였다는 결론이다. 기존에 청소와 빨래를 위해 소요되던 시간과 노력, 압박감을 해소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특히 건조기는 신의 한수가 분명하다. 아기 옷, 어른 옷, 수건 등을 구분해서 매일 빨아도 별 부담이 없다. 다른데서 절약하더라도 건조기는 고려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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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은_누구에게
도움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기에, 딱히 할 얘기는 없다. 그냥 우리가 했던 방법들을 돌이켜보면, 조리원(2주) + 산후도우미(4주) 도움을 받았고, 이후에는 장모님이 매일 오후에 오시고 계시다. 조리원과 산후도우미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조리원은 뭐하는 곳일지 궁금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곳은 ‘아이를 맡아주는 호텔’인 것 같다. 따라서 조리원 선택의 기준은 호텔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즉, 객실 상태와 전망, 식사의 퀄리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케팅 원론 시간에 배우는 ‘동기-위생이론’ 같다. 선택할 때는 아기를 얼마나 꼼꼼하고 안전하게 챙길지 고민하지만, 지내는 동안에 느끼는 만족감은 사실 객실의 수준과 청결, 그리고 식사다. 특히 하루 종일 조리원에서 식사를 해결하려면, 충분히 맛있어야 한다. 뭔가 육아에 필요한 지식과 노하우를 배우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산후도우미는 심리적, 육체적으로 정말 도움이 된다. 아기도 봐주시지만, 기본적인 집안일과 식사 준비를 해주신다. 엄마, 아빠 역할에 적응하는 동안 정말 큰 도움이 된다. 한 달 정도 도와주시는 것이니, 어떤 분인지에 따라 좀 달라질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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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_아빠의_역할
밖에서 돈버느라 열심히 일했다는건 아버지 세대의 변명인 것 같다. 일단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그리고 주말엔 약속 잡지 않고 집에 있으면 된다. 그리고 혼자 보내던 시간은 이제 없다고 보면 된다. 난 그래서 밤에 아내와 아기가 모두 잠들었을 때 잠깐씩 산책한다. 일단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남편이 집에 왔다’가 아니라 ‘힘들게 육아하는 아내와 역할을 교대하기 위해 이제서야 집에 왔다’에서 시작하면 된다.
이를 위해 알아야할 것들은 많다.
- 혼자 식사 정도는 차려먹을 수 있어야 한다. 차려진 음식을 냉장고에서 꺼내먹는게 아니라 냉장/냉동실에 있는 재료들로 간단한 음식은 해먹을 수 있어야 한다.
- 집 청소, 화장실 청소, 빨래, 집안 정리, 옷 정리,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처리 등 기본적인 집안일은 익숙해야 한다. 육아를 시작하고 느꼈던게 하나 있는데, ‘결혼하고 지난 3년간 훈련받은 집안일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구나’는 것을 느꼈다.
- 육아를 위해서는 분유 먹이고, 트림시키고, 안거나 눕혀서 재울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기를 안고, 대화하고, 놀아주는게 충분히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저귀나 옷을 갈아입히고 씻길 수 있으면 된다. 해봐야 익숙해지는게 정확한 표현이다. 어쩌다보니 난 씻길일이 별로 없었는데, 몇 주 지나고 나니 아내와 나의 목욕 스킬이 너무 차이나버렸다. 이러면 따라갈 기회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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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