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에 대하여 2 – 예멘의 역사

예멘에 대하여 1 –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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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에 ‘The Great Dam of Marib’이라는 댐이 생겨났다. 사막의 모래로 가득할 것 같은 아라비아 반도 끝에, 비옥하기 이를데없는 낙원같은 땅이 있었다. 그들은 어떤 기술인지 밝혀지지 않아서 ‘불가사의’로 설명되는 거대한 댐을 축조한다. 그 지역을 중심으로 거대한 왕국이 번성했고, 서쪽의 로마, 동쪽의 인도와 페르시아, 남쪽의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중개무역의 중심이 된다. 이 때 ‘모카’라는 항구가 세계사에 각인된다.

번성하던 예멘의 왕국은 북아프리카의 ‘악숨’ 왕국에 점령되고, 아라비아 반도에 들어온 아프리카 왕국은 불과 100년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난다. ‘악숨’ 왕국은 그 자체로 ‘아프리카의 기독교 국가’로 솔로몬 왕, 10계명과도 연결되는 독특한 왕국이었다. 이들이 비옥한 아라비아 반도에서 물러난 이유는 다양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Marib Dam’이 붕괴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프리카인들은 물러갔고, 예멘 민족은 흩어졌고, 그 자리에 이슬람 제국이 자리잡는다. 오랜 시간동안 이슬람 제국의 변경 지역으로 인식되던 예멘은 서양 열강이 아프리카, 중동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다시 세계사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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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 왕국 (Saba, ~395)

예멘에 사람이 거주한 기록은 3,000년이 넘는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 대한 무역으로 성장하였고, 농업에 기반을 둔 일부 지역이 자본을 축적한다. 그 결과, 마리브(Ma’rib) 지역에 기반을 둔 사바(Saba)가 등장한다. 육상의 무역 루트를 따라 성장하던 사바 왕국은 해상 무역이 성장함에 따라 점차 쇠퇴했고, 주요 무역품인 유향의 사용량이 줄어들면서 사바 왕국은 힘을 잃는다.

 

힘야르 왕국 (Ḥimyarite / Ḥimyar,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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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의 정통 역사는 힘야르 왕국에서 시작한다.

힘야르 왕국은 아라비아 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현재의 예멘 지역을 기반으로 생겨난다. 기원전 110년에서 자파르를 기반으로 성장하였고, 4세기 초반 사나로 수도를 이전한다. 베두인계 왕국으로 한때 메카 지역까지 진출할만큼 강성하였지만, 에티오피아의 악숨(Axum) 왕국의 침략으로서기 525년 멸망한다. 특이하게도 유대교를 믿었고, 이는 기독교의 로마 제국과 조로아스터교의 사산조 페르시아 (현재의 이란)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동서 무역의 한 축을 담당하며 성장한다. 힘야르 왕국을 시작으로 예멘은 커피 무역 훨씬 이전부터 로마, 아프리카, 페르시아와 인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점이 된다.

동아프리카 해안 도시와는 정기적으로 왕래가 있었고,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상아를 로마 제국에 판매하는 중개 무역이 성행했다. 이러한 무역 루트는 경제적인 교류뿐 아니라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교류까지 포함하게 된다. 힘야르의 차리벨(Charibael) 왕은 ‘Friend of Emperors’라고 묘사될만큼 양국은 평화적인 교역 관계를 형성한다.

“23. And after nine days more there is Saphar, the metropolis, in which lives Charibael, lawful king of two tribes, the Homerites and those living next to them, called the Sabaites; through continual embassies and gifts, he is a friend of the Emper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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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야르 왕국 초기에는 카타반(Qataban)과 사바 왕국을 정복하며 세력을 형성한다. 사바와 카타반은 다시 힘야르에서 독립하고, 카타반은 하드라마우트(Hadhramaut)에게 정복당한다. 결국 힘야르는 하드라마우트를 정복하고, 독립했던 사바까지 재점령함으로서 아라비아 반도 남쪽 지역을 모두 장악하게 된다. 이 무렵 힘야르 왕국은 다신교를 버리고, 유대교를 국교로 받아들인다. 이는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340년보다 40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다. 에티오피아와는 해협 하나를 두고 인접한 국가였고, 아라비아 반도의 기독교/유대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비기독교 국가인 페르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서 유대교를 받아들인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역사에는 유대교를 받아들인 사건을 기록한다.

힘야르의 왕, 아부 칼리바(Tub’a Abu Kaliba As’ad, 390–420)가 아라비아 반도 북부로 원정을 떠났다. 현재의 메디나인 Yathrib을 무혈입성하고, 그의 아들을 관리자로 남겨두고 원정을 계속했다. 하지만 Yathrib의 사람들은 그의 아들을 살해했고, 이에 격분한 아부 칼리바는 원정을 멈추고 Yathrib로 돌아와 도시를 포위한다. 이 때 Yathrib의 유대교 율법학자 두 명이 왕을 방문하고, 건강이 안좋았던 그에게 평화협정을 제안하며, 유대교를 설파했다고 한다. 그 후에 그 두 명의 학자를 수도로 데려갔고, 공식적으로 유대교를 힘야르의 국교로 선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어찌되었든 후대 왕인 Dhu Nowas (517–525, 아래 그림) 시점에는 확실히 유대교로 개종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슬람의 아버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바로 옆에 유대교 국가가 있었다는 것이 새롭다. 그리고 무슬림의 성지인 메디나(Yathrib)에 유대교 율법학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도 신선하다. 흔히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게 유대교는 유대인만의 종교는 아니었던듯하다. 그랬기에 전세계적인 시오니즘이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40px-Crowned_man,_Za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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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아라비아 반도의 강자였던 힘야르 왕국은 기독교의 비잔티움과 갈등을 유발했고, 기독교로 개종한 에디오피아의 악숨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번외로, 힘야르 왕국의 몰락과 악숨 제국의 침입, 그리고 악숨 제국이 결국 아라비아 반도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마리브 댐 붕괴’라는 사건이 등장한다. 마리브(Marib) 댐은 세계최초로 만들어진 인공 댐이다. 마리브 댐은 기원전 7~8세기에 사바 왕국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나, 힘야르 왕국이 몰락해가는 5세기 무렵 붕괴되었다고 한다. (또는 붕괴될 위험으로 인해 댐의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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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숨 왕국 (Axum/Aksum, 520~570)

Axum

하늘 높이 솟은 오벨리스크로 유명하다. 북아프리카를 기반으로 번성했던 국가이고, 한 때 아라비아 반도까지 진출했다. 한창 때는 로마, 페르시아와 비견될만큼 강성했다. ‘강성한 통일 제국’이 없었다고 인식되는 아프리카에서 이집트, 카르타고와 함께 리즈 시절을 이끌었다.

초기 기독교 국가임과 동시에 왕국의 시조가 솔로몬왕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왕의 아들인 메넬리크는 십계명이 기록된 법궤를 이스라엘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법궤는 악숨의 성모 마리아 시온 교회에 보관되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그들의 보물이기에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아라비아 반도로까지 진출했던 악숨 왕국은 힘야르 왕국처럼 중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하지만 무함마드에 의한 이슬람 국가 설립으로 그들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축출된다. 자연히 중개 무역의 주도권은 아랍 무슬림에게 넘어가고, 악숨 왕국은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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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조 페르시아 (Sassanid, 570~630)

남부 아라비아 반도가 기독교 국가가 되어가는 것에 반발한 사산조 페르시아의 호로스 1세는 바리즈(Vahriz) 장군을 파견하여 힘야르의 왕 사이프 이븐 이야잔(Sayf ibn Dhi-Yazan)을 돕는다. 800명 정도의 병력을 보냈다고 하는데, 어쨌든 사산조 페르시아의 도움으로 예멘 내에 주둔하던 아숨 왕국의 병력을 몰아낸다. 기어이 독립하나 싶었으나, 사이프 왕은 암살당하고 힘야르 왕국은 다시금 페르시아의 지배에 들어간다.

이 시절부터 예멘은 로마-기독교 세력과 페르시아 세력 사이에서 대리전을 펼쳤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미국-사우디-수니로 연결되는 세력과 이란-시아로 연결되는 세력간의 내전이 발생하고 있고, 이란의 지원을 받은 반군 세력은 지대공, 지대함 미사일까지 운영중이다. (후티 반군에서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미사일을 사우디 본토까지 날리고 있으나, 예멘에서 미사일을 자체 개발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630년은 무함마드가 메카로 돌아온 해다. 헤지라 원년이다. 그리고 10년 후, 641년 사산조 페르시아는 이슬람 군대에 의해 멸망한다. 제3대 칼리프 우스만이 644년 북아프리카,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정복했으니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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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시대 (Islamic Empire, 630~)

630년을 전후하여 이슬람 제국이 예멘 지역을 공략한다. 메카에 기반을 마련한 이슬람 세력이 가장 먼저 공격한 지역 중 하나이다. 이 때 사나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페르시아의 바단(Badhan)이 패퇴하고, 페르시아는 순식간에 몰락한다.  이 때부터는 오스만 투르크가 등장하는 16세기 이전까지 이슬람 제국의 시대가 이어진다.

초기 예멘으로의 이슬람 선교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무함마드가 직접 포교하지도 않았고, 예멘 내에 무슬림도 없었다. 일부 사절단 형태의 선교자들이 포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제 막 메카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이슬람의 상황을 생각해볼 때 약간은 의아하다. (심지어 이 때는 꾸란조차 집필되지 않은 상황이다.) 중계 무역에 의존하고 있던 예멘의 특성상 외부 세력과 함께 들어오는 종교적 유산에 비교적 관대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굳이 반대할만큼 기존의 종교적 뿌리가 깊지 않았을 수 있다. 예멘에서는 al-Aswad al-Ansi라는 사람이 스스로 선지자라 주장하다 살해당하기도 한다.

현재 예멘에 남아있는 문화적 유산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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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시대 (Ottoman Empire, 1517~)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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