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패드를 처음 사용한 것은 아이폰 4를 사용하던 시절인걸로 기억한다. 꽤나 무거웠고, 미팅 나갈 때 가지고 다니면서 미팅의 상대방과 문서를 같이 보거나, 내가 열람하는 목적으로 사용했다. 몇 가지의 아이패드용 게임을 해봤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메모를 하거나, 업무용으로 사용하려고 시도했다.
결론적으로는 ‘랩탑의 기능’을 대체하거나, 보완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맥북과 아이패드, 아이폰, 그리고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안드로이드폰까지 들고 다니는건 스마트와는 거리가 한참 먼 ‘멍청함’으로 느껴졌다.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지만, 실상은 꽤나 무거운 배낭 속에 온갖 잡동사니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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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근에 아기 사진을 보는 용도, 집에서 영화나 웹툰 보는 용도로 아이패드 미니를 사용했다. 1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지만, 사용 빈도는 매우 낮다. 지금은 침대 밑 어딘가로 떨어졌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집밖으로 가지고 나간적은 없으니, 집 어딘가에 있겠지하고 있다. 없어도 되는, 아이폰과 비교해서 ‘디스플레이가 큰 것’ 외에는 별다른 활용처를 찾지 못한 아이패드의 두 번째 사용 시도는 ‘거의’ 실패다. (이 얘기를 하면서 침대와 벽 틈 사이로 떨어진 아이패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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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번 째 아이패드 시도. 사실 시작은 ‘맥북 대신 아이맥을 업무용 메인 컴퓨터로로 사용’하면 어떨까 고민하면서 시작되었다. 맥북을 들고 다니는 것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하지만 그만큼 미팅에 집중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울려대는 온갖 알림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노티피케이션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느라 시간을 많이 소모하고 있다는 얘기다. (난 앱 아이콘에 노티피케이션 숫자가 뱃지로 보여지는 것을 불편하게 느낀다. 집착이나 일종의 편집증 같다.)
내가 생각한 대안은 이렇다. 모든 업무는 사무실에 있는 아이맥을 통해 한다. 일을 해야할 때는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업무용 데스크탑을 사용하자는 의도이다. 대신, 생각이 필요하거나 회의를 할 때는 랩탑 없이 종이와 펜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메모하려고 한다. 물론 이 때도 한계는 있다. 회사를 운영해야하는 입장에서 급하게 확인해야할 이메일이나 문서도 많고, 은행 업무부터 다양한 일들을 처리해야할 순간들이 있다. 이 때 랩탑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이 역시 ‘마음이 놓이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키보드가 달린 아이패드 프로와 (물론 애플 펜슬은 일단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맥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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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가 기대하는 모습들은 다음과 같다.
– 스마트폰 (아이폰과 블랙베리)은 최소한의 알림만 설정하고, 대부분을 차단한다.
– 회사에서 일할 때는 스마트폰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전화 / 문자 용도로만 사용한다.
– 대신 일할 때는 아이맥으로만 작업하고, 퇴근할 때는 업무 모드에서 스위치를 끈다.
– 아이패드는 생각을 정리하거나, 문서를 읽는 용도로 사용한다.
– 그리고 아이패드를 사용할 때는 아이맥이 있는 책상보다는, 빈 테이블을 이용한다.
– 미팅 시에도 아이패드만을 가져가며, 간단한 메모 기능과 문서 열람용으로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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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거창한데, 결론만 얘기하자면 사람과 대화하거나, 미팅을 하거나, 집중해서 생각하거나, 문서를 읽어야할 시간에는 온갖 이메일과 노티피케이션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되어보자는 취지다. 물론 아이패드 하나 바꾼다고 대단한 변화가 있을거라 기대하는게 좀 우습기도하지만, 여튼 약간의 기대가 있다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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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주일간 사용해본 결과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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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크고 무겁다.
그렇다.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는 크기만큼이나 무겁다. 정확한 무게를 비교해보면 거의 절반 수준 (아이패드 프로가 713그램, 맥북 프로 13인치가 1.5KG)이지만, 실제로 들었을 때 또는 가방에 넣었을 때 ‘맥북 프로 13인치 2016년형 논터치바’에 비하여 가볍거나, 컴팩트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맥북을 넣고 다니던 가방을 동일하게 사용했고, 들어가야할 잡동사니도 결국 비슷해졌다.
딱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아이패드 충전기는 집, 사무실, 차까지 어디에나 있다는 점이다. 충전기를 챙길까말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은 생각보다 괜찮은 점이다. 결국 휴대의 편의성 측면에서 보자면,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건 사용한 첫 날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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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하나의 화면에만 집중할 수 있다.
생각보다 의미가 있다. 물론 (꽤나 신기한) 멀티테스킹 모드를 지원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이패드는 앱 하나를 풀스크린으로 보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맥북의 Dock과 불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잔뜩 열어놓고 ‘멀티테스킹’할 필요가 없다. 글을 쓸 때는 글만, 문서를 읽을 때는 문서에만 집중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얘기고, 이러한 특징이 장점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수 있지만, 여러 화면을 동시에 띄워놓고 작업하는 나에게는 꽤나 신선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아이패드 프로는 맥북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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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랩탑은 아니다.
아무리 랩탑을 대체할 용도로 사용하고 있을지라도, 이건 아이패드다. 영화를 보고, 웹툰의 보고, 책을 보거나 웹서핑을 하는 그 아이패드란 말이다. (습관이 무섭다는게 이런것 같다.) 그래서 집에와서 열어놓고 뭔가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랩탑을 열면 집에서까지 일반화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고, 아이폰을 들면 침대에 누워 트위터를 한다. 12.9인치짜리 아이패드에 스마트 키보드까지 달려있다면 한 손에 들고 침대에 눕기는 어렵다. 적당히 앉거나, 창의적이고 안정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책을 읽거나, 문서를 보거나, 조금은 의미있는 웹서핑을 하게된다. (물론 이왕 산거니 어떻거든 사용해보려는 자기 학대인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퇴근 후 침대에 누워 트위터는 시간을 줄였다는 것에 만족하고, 열어보지 않을 랩탑을 오늘도 들고왔다는 자괴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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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사소한 것들
- 자동완성 기능으로 인해 오타가 급격히 늘어난다.
- 스마트키보드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 간단한 단축키가 동작한다. (예를 들어 크롬에서 command+L을 누르면 주소창이 열린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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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달 사용기는 한달이 지난 후에 업데이트해보는걸로…물론 그 때는 이미 패드를 팔고, 맥북으로 돌아갔거나 애플펜슬까지 들고다니는 예찬론자가 되거나 하겠다. 일단 이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만족스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