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맛만 놓고 보면 높은 평가를 하기는 어려운 술들”이라면서 “마케팅을 아주 잘한 케이스다. 마케팅의 승리” – 인터넷 기사에서 인용
#1.
올해 초 김포공항 면세점에 들렀다. 시간이 남아 이런저런 위스키들을 ‘구경’하고 있다가 Oban과 Lagavulin 브랜드의 독특한 위스키가 보였다. 왕좌의 게임 스페셜 에디션이었고, 고민 끝에 Oban을 한 병 샀다. 한국에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았지만, 역시나 출시 첫 날 완판되었다고 했다.
그러다 얼마전 아내가 치과에 가는 동안 병원 건물 지하에 있는 마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위스키 코너도 기웃거리고 있다가 남아있는 몇 병의 스페셜 에디션을 발견했다. 위스키 코너 구석에 빈 케이스만 나뒹굴고 있었는데, 담당자에게 문의해보니 ‘나도 빈 케이스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첫 날 다 팔린걸로 아는데, 빈 케이스가 있다는건 술도 있다는 뜻이니 찾아보겠다’고 했다. 잠시 후 먼지쌓인 병을 여러 병 들고 왔고, 남아있는 모든 병을 카드에 담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위스키를 많이 산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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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페셜 에디션은 총 7개의 가문, 그리고 나이트 워치까지 총 8종이 출시되었다. 각 가문의 특징을 살린 증류소를 선택했고, 그 스토리를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국내에는 타이렐 가문의 `클라이넬리쉬’를 제외하고 출시되었다.
- 나이트 워치 – 오반 리틀 베이 리저브
- 라니스터 – 라가불린 9년산
- 스타크 – 달위니 윈터스 프로스트
- 타가리엔 – 카듀 골드 리저브
- 바라테온 – 로열 로흐나가 12년산
- 타이렐 – 클라이넬리쉬 리저브
- 털리 – 싱글톤 글렌둘란 셀렉트
- 그레이조이 – 탈리스커 셀렉트 리저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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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타크 – 달위니
추운 북부 지방을 방어하는 윈터펠의 스타크 가문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달위니 증류소와 만났다고 한다. 사실 달위니보다 북쪽에 위치한 증류소는 매우 많지만, 여기는 ‘고지대’의 특성까지 지니고 있어 매우 춥다고 한다. 대충 디아지오 라인업 중에 하나를 억지로 매칭한 느낌이 강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병에는 스타크를 상징하는 Dire Wolf가 그려져있다. 도수는 43도로 약간 높고, 달위니 특유의 꽃과 꿀 향이 난다고 들었다. 스타크 가문처럼 춥고 높은 곳에서 증류와 숙성을 거치기 때문에 비교적 원재료의 맛과 향을 잘 간직한다. 국내에서는 달위니 15년이 비교적 잘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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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라니스터 – 라가불린
굳이 스페셜 에디션이 아니라도 충분히 잘 팔리는 위스키다. 아일레이 섬을 대표하는 피트향 강한 위스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술이다. ‘싱글 몰트 위스키란 이런건가’를 처음 생각한게 라프로익 10 이었고, 그 후로 아드벡, 보모어를 거쳐 라가불린을 마셨고, 그 후에 호기심으로 카올라, 브룩라디를 마셔봤다. 개인적으로 가장 낮은 등급의 라인업이라면 라가불린 > 아드벡 > 라프로익 > 보모어 순으로 좋아한다. 약간 연식을 높이면 보모어도 충분히 좋다.
결국 왕좌의 게임에서 가장 공들인 캐릭터가 라니스터인 만큼, 디아지오는 가장 강력한 브랜드를 라니스터에 붙여주고 싶었을 것 같다. 강렬한 피트향이 라니스터의 권력욕을 상징한다는 건 역시나 대충 갖다붙인 스토리인것 같고, 오히려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특징이 더 어울리는 설명인것 같다. 라벨에는 사자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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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이트 워치 – 오반
에디션 라인업 중 유일하게 검은색이다. 병이 이 세상 간지가 아니다. 일단 멋지다. 증류소의 위치가 하이랜드 서쪽 끝에 위치해있어서 마치 캐슬블랙과 비슷한 느낌을 줄지 모르겠다.
오반은 특이하게도 14년산을 주로 마신다. 부드럽고 약간의 짠내가 난다. 왕좌의 게임 에디션은 아직 마셔보기 전이지만, 스페셜 에디션답게 기존 오반의 개성은 희석되지 않았을까 싶다. 온갖 과일향과 캐러멜의 풍미가 느껴진다고 하지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태운 오크향’이 난다는 의견에는 어느정도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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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레이조이 – 탈리스커
스페셜 에디션 세트 중 유일하게 구하지 못한 술이다. 탈리스커는 기본적으로 저렴한 버전의 아일레이 위스키 맛이 난다. 피트향도 적당하고, 스파이시하다. 지리적으로 스카이섬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레이조이의 강철군도를 닮았다. 하이랜드로 분류하기도 하고, ‘기타 섬지역’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아란, 쥬라 등과 같은 위스키 지역으로 분류한다.
보통 10년산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Storm 버전도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보통 45도가 넘어가기 때문에 생각보다 독하다. 라벨에는 크라켄이 그려져 있다. 가문과 증류소의 매칭이 가장 잘 이루어진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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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타가리엔 – 카듀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오랜 역사와 맛을 가진 위스키다.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역사가 타가리엔과 유사하다는 의미에서 선정되었다 탈리스커와 함께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매칭이다. 스페이사이드를 대표하는 증류소 중 하나이며, 19세기 말 조니워커에 인수되면서 주요 원액으로 사용된 위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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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바라테온 – 로열 로크나가
1848년에 빅토리아 여왕이 마셔본 후 왕실 납품 계약을 맺고 로열워런트를 수여받는다. 조니워커의 원액으로도 사용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윈저의 베이스로 사용된다.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몰트 위스키 바에서도 흔하게 보여지는 술은 아니다. 디아지오 내에서도 매우 작은 증류소다.
이번 에디션의 대부분이 연식을 표기하지 않는 NAS인 반면에 로열 로크나가는 무려 12년산이다. 부드럽고,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평이 있다. 왕실과 연결된다는 의미에서 바라테온과 연결한 것 같지만 설득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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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타이렐 – 클라이넬리쉬
꽤나 좋은 평가를 받는 클라이넬리쉬 14년은 이번 에디션의 기대주였다. 실제 평가도 나쁘지 않았지만 국내에서는 출시되지 않았다. 하이랜드 최고의 위스키 중 하나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아일레이 위스키처럼 피트향이 강한 위스키를 생산하였고, 디아지오 브랜드답게 조니워커의 원료로 사용된다. 특히 골드 리저브에 사용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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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튤리 – 싱글톤
싱글톤은 총 3개의 증류소에서 생산된다. 그 중 이번 에디션에 참가한 증류소는 글랜둘란이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싱글톤의 베이스로 사용되는 위스키다. (아시아로 판매되는 싱글톤은 글렌 오드 증류소에서 생산된다.) 트라이던트 강이 흐르는 리버런의 툴리 가문은 과거 물레방아를 작업에 활용했다는 글랜둘란 증류소가 매칭되었다.
스토리 매칭은 작위적이지만 글랜둘란 증류소는 처음인지라 기대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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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카듀와 클라이넬리쉬에서 숙성된 위스키를 베이스로 만든 와이트워커 by 조니워커가 있다. 일단 저렴하니, 마시기 편하게 만들었다. 화이트워커 컨셉답게 차갑게 마시면 더 맛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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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병씩 마셔봐야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