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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대화
“괜찮아 보이지 않으세요?”
보통 처음 파트너십을 시작하면서 많이 듣는다. 본인 사업이 매력적이라는 어필, 그걸 확인하려는 질문들이 있다. 답은 정해져있다. 강한 긍정일지, 약한 긍정일지 정도의 차이다.
난 개발사를 하고 있으니, 첫 만남은 ‘개발 의뢰’로 시작된다. 개발을 의뢰하고, 돈을 준다. 우린 개발을 수행하고, 결과물을 전달하면서 돈을 받는다. 이 단순한 거래 과정에서 질문이 들어온다. ‘괜찮아 보이지 않냐’고. 본인이 앞으로 해나갈 사업에 대해 얘기하고, 나의 의견을 묻고, 그 과정에서 ‘같이 해봅시다’는 얘기가 나온다. 보통은 이렇게 파트너십이 시작된다.
관계의 시작
‘완벽한 아이디어는 없다. 실행하면서 구체화되는 것이다.’고 주커버그가 어느 대학 연설에서 말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아이디어의 가치는 제로에 가깝다. 결국 실행을 해봐야 그 아이디어가 갖고 있는 가치를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관계의 시작에서는 아직 ‘실행’이 시작되지 않았고, 따라서 ‘괜찮아 보이지 않냐’는 말은 긍정도 부정도 하기 어려운 말장난에 가깝다. 물론 경험적으로 성공과 실패의 확률은 생각해볼 수 있다.
어찌되었건 관계를 시작하려면 구조가 필요하다. 복잡하지 않다.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일에 대한 댓가는 어떻게 받을지만 정하면 된다. 여기에는 누가 그 댓가를 책임지고 줄 것인지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나와 나의 회사가 소프트웨어/서비스 개발을 담당한다면, 개발자와 디자이너, 기획자와 PM을 포함해서 4~5명 이상 투입된다.(그렇다고 가정해보자) 이 일만 오롯이 진행하는게 아니더라도 한 달에 비용으로 환산하면 수천만원은 되는 가치가 투입된다. 대가를 받아야하고, 당연히 누가 줄지도 정해져야 한다.
돈 관계를 명확히 정하고, 이에 필요한 구두 또는 문서상의 합의를 하는게 파트너십이 돌아가기 시작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 된다. 이제 맡은 일을 하면되고, 예상했거나 계획했던 그 시너지가 날 것인지를 확인해보면 된다.
사업의 3가지 요소
사업은 돈>사람>서비스로 이루어진다. 서비스 대신에 제품을 넣어도 좋고, 돈 대신 지분을 넣어도 된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필요한 서비스, 제품이 필요할 것이고, 이를 만들고 운영하고 판매할 수 있는 사람이나 조직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에게 줄 금전적인 보상이 필요하다. 보통의 스타트업은 돈 없이 사람이 모여서, 서비스를 만든다. 이 서비스가 ‘투자’라는 이름의 돈을 만들어내고, 이 돈이 사람을 유지하고 키워나간다. 사람>서비스>돈의 순서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의기투합한 경우가 아니라면 돈-사람-서비스의 순서로 돌아간다. 일단 돈 문제가 해결되어야 사람이 모이고, 이들이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돈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일 수 있는 사람은 ‘그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결론이 아쉽지만, 결국 좋은 사람과 파트너가 모이고, 좋은 팀을 만들어내는 것은 적절한 초기 자금이다.
파트너십의 생성, 시작, 다소간의 진행
”돈 안들이고 사람을 쓰고싶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능력있는 어른이, 이미 사업을 하고 있는 어른이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면 그 이유는 ‘돈’이다. 다른 이유가 무수히 많지만, 결국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돈’을 아끼기 위함이다. 경험과 전문성, 시간도 결국은 돈으로 살 수 있다.
목표했던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A, B, C라는 서비스가 필요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D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이를 단기적으로 개발하려면 총 4개의 서비스와 시스템을 외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당연히 이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내부에 인력을 채용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결국 필요한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PM을 모두 채용하면 5~10명은 필요해질 수 있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금액이 된다. 그렇다고 모두 신입 개발자나 디자이너로 채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어느쪽에든 돈이 많이 든다.
“정말 잘 될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누가 이걸 개발만 해준다면 말이죠.”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해왔던 얘기다. ”누구보다 잘 해낼 자신이 있고, 실제 잘 해오고 있지만 혼자 하다보니 한계가 많다. 이런 서비스, 시스템만 지원된다면 한국의 AAA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의심하는건 아니다.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고, 사업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자신감도 없다면 그것도 이상하다. 자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든다. 이 정도로 확신이 있고, 자신이 있다면 왜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을까? 집이라도 팔고, 대출이라도 받아서 충분한 초기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돈이 없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정말 신기한 상태인 경우가 많고, 예외 없이 다들 비슷하다.
”난 돈을 많이 벌었고, 지금도 많이 벌고 있다. 이 사업 정말 잘 돌아가고 있다.“
사업을 설명할 때 하는 얘기다. 잘 되어가고 있고, 지금까지 성공해왔고 지금은 나와 더 큰 성공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좋은 차를 타기도 하고, 좋은 음식을 먹거나 마시기도 한다. 주변에 돈 많은 사람도 제법 있다. ‘돈을 보여주세요. 이제 돈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라고 해보자. 제 때 돈이 나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이 벌었고, 많이 벌고 있고, 앞으로도 많이 벌 예정이지만 지금은 돈이 없다. 정말 신기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된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아무하고 나누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특별한 기회’가 올 가능성은 없다. 누군가 나를 찾는다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게 합리적이다. 예를 들자면 1) 이 사람은 돈보다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것 같고, 2)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으며, 3) 이 사람이 참여함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등이다. 물론 그 아래에는 신뢰나 선의가 있을 것이다.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과 금전적인 이해 관계를 분리해볼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내가 금전적으로 효율적인 옵션’이기 때문에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돈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 발생
”들어간 것보다 얻은게 없다.“
파트너십이라고 특별하지 않다. 돈을 주고 관계를 맺는 직원과의 고용 관계나 업체와의 용역 관계와 같다. 결국 ‘시간-노력-성과’와 ‘돈’과의 관계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면 그 관계는 깨진다. 고용이나 용역 관계는 돈과의 관계를 계약서에 아주 정확하게 명시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파트너십은 ‘돈’ 얘기를 전면에 꺼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으면서도 ‘돈’과의 관계에서 ‘손해’가 발생하면 안된다. 엄청난 모순이 있다.
1단계 : 돈은 빠르게 바닥을 보이기 시작
“돈은 어떻게든 제가 마련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A가…”
돈은 ‘실제 주머니에 있는 것’과 앞으로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다르다. 사실 후자는 없는 돈이라고 보면 된다. 가능성도 낮고 시간도 오래걸린다. 반면 나가는 돈은 ‘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도 확실하게 나간다. 사실 그 이상으로 나간다. 당연히 돈은 빠르게 말라간다. 보통 사업을 시작하자고 얘기하는 시점에서 3~6개월이면 돈이 바닥난다.
2단계 : 사업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는 상태
“개발이 요청 사항을 못 따라오는 것 같아요.”
당연한 얘기지만 사업적인 요청 사항을 개발이나 운영 등의 실무팀이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 아직 조직이 완성 단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정직원도 얼마 없는 상황에서 애매한 관계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단계에서는 ‘이제 겨우 운영 가능한 v1.0.0 수준의 서비스’를 가지고, 뭔가 계속 업데이트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일 것 같다. 이 때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A 타입 : 어설픈 서비스로 기가 막힐 정도로 사업이 돌아간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2019~2020년에 실제 운여했던 프로젝트이다. 기본적인 커머스 서비스를 중국 시장 타겟으로 만들어놓고, 현지 결제PG를 적용하고, 국내 유명 패션몰의 API를 연결해서 매일 500여개 이상의 디자이너 신상품을 중국 시장에 선보이는 서비스였다. 대상은 개인보다는 중소 의류몰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었다. 서비스를 런칭하고 2~3개월만에 월 억단위를 팔았다. 중국 상품을 국내 오픈마켓에 판매할 수 있는 상품관리시스템도 정말 기초적인 기능들만 제공했지만 그걸로도 월 억단위를 팔았다. 이 때는 ‘파트너 없이 나 혼자서도 잘 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파트너십이 깨진다. 물론 돈 문제도 있다.
B 타입 : 뭔가 완성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이 역시 경험한 사례다. 기존에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이 강하며, IT사업 경험이 없는 경우에 주로 발생한다. 이들은 본인이 만든(정확히는 본인이 소개할) 서비스가 이 정도 수준이라는걸 부끄러워한다. ‘와우, 역시 대표님 대단하십니다’는 반응이 아니기 때문에 부끄럽다. 그래서 뭔가 더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는 끝이 없다. 그러면서 돈이 바닥나고, 팀이 깨진다.
3단계 :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 결속을 시도
“개발이 되어야 뭘 할텐데, 이래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그 모든 책임을 개발팀에게 전가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예전 회사에서 알고 지내던 개발자나 기획자를 데려온다.내부에 있던 운영, 기획, 디자인 파트가 대부분 퇴사하고 새로 온 사람으로 교체된다. 그리고 개발을 담당하던 나와 우리 회사도 손을 뗀다. 이 과정에서 많이 나왔던 부분이 ‘책임 전가’다. 나와 우리 팀을 손을 떼는게 개발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으로, 또는 그 이유인 것처럼 얘기하고 다녔다. 이유야 말하기 나름이니, 뭐라고 이야기하든 상관없다.
외부 파트너 개인 / 회사와 결별하는 것은 대표 입장에서 ‘돌을 던지는’ 마지막 승부수 같은 행위처럼 보인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비난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은 이론적으로 멋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트너가 계속 필요하다면, 개발팀의 도움이 계속 필요하다면 자존심보다는 도와달라고 부탁하는게 맞았을 것 같다. 도와달라고, 돈을 줄 수 없으니 미안하다고, 하지만 일정 기간만 더 도와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개발을 제대로 못했으니 이제 그만하자고 얘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다.
4단계 : 파토
“뭐 다 아실거 같아서 긴 설명은 생략하고…”
참 재밌게도 내가 겪은 모든 상황에서 상대는 매우 조용했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원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별 말이 없다. 혼자 생각했고, 혼자 결론을 내린 후 그다지 성의있게 설명하지 않는다. 쫒기듯, 도망가듯 관계를 청산하고 떠난다.
5단계 :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각자 갈 길 가는
“음…”
그리고 연락없이 제 갈 길을 간다. 서로 연락할 일도 없다. 가끔 소식을 건너서 들어보면 한두명의 직원과 함께 뭔가 연관된 일을 계속 하고는 있는 것 같다. 서로 대단한 일을 할 것처럼 의기투합했다가도 한 순간 연락을 끊을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관계다. 그 외에는 별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