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업이 겪는 번아웃에 대하여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더라도,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면 되는지 모두가 아는 영어 단어들이 있다. 번아웃은 ‘지쳤다’의 강조형이자, ‘스트레스’와 함께 근로자의 상태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다. 용례를 보자면 주로 ‘밤을 샜다’, ‘몇 달째 야근중이다’, ‘주말에도 일했다’와 함께 쓰인다.

 

#1. 들어가며

스타트업이라 부르는 종류의 기업이 유지되는 원리는 간단하다. 더 적은 사람들이, 더 많이 일한다. 또는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개발한다. 대략 이런 얘기들이다. 즉,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원을 통해서 생존해야한다는 뜻이다. 이는 함께 일하는 ‘직원’이 아니라 ‘팀원’ 또는 ‘멤버’, ‘공동창업자’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정당한 돈을 주고 고용한 직원이기보다는 개인의 업무량 = 회사의 성장 = 개인의 성장이라는 공식이 가능한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는 창업자, 대표의 관점이다.

 

#2. 언제

회사가 설립된지 5년이 다되어간다. 그 동안 (비교적 회사의 턴오버가 낮다고 생각했음에도) 많은 이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늘 괴롭고 힘든 일이다. 그러면서 몇 가지 패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패턴의 첫번째는 시간이다. 일반적으로는 2년, 길게 잡아서 3년 정도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번아웃’ 상태로 들어간다. 만약 입사 시점에 회사가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나, 주력 서비스, 또는 핵심 멤버들이 변화했다면 이 시간은 더 짧아진다.

 

#3. 누구에게

같은 환경에서 ‘번아웃’이라는 현상은 주니어보단 시니어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연력으로는 30대 초중반을 넘어가는 시기다. 몇 가지 의미있는 부분은 ‘번아웃’이 업무량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 8시간 근무, 잦은 휴가 및 재택 근무를 통해서도 ‘번아웃’은 발생한다. 그리고 회사나 팀이 가진 ‘비전’과도 큰 관계는 없어보인다. 즉, 근무 시간의 조절과 비전의 공유는 ‘번아웃’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기억도 가물가물한 경영대의 수업을 떠올려보면) 허즈버그의 위생이론이 현실적으로 정확하다는 생각도 든다.

 

#4. 현상들

그렇다면 함께 일하는 사람이 ‘번아웃’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기본적인 사고 능력과 사람에 대한 관심, 약간의 관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요즘 분위기가 어둡다’, ‘다운되어있다’, ‘말 수가 줄었다’ 등으로 묘사된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에는 재택 근무 비중이 높아지고, 회사보다는 회사 외에서의 활동이 더 눈에 띈다. 세미나를 간다거나, 개발자 모임에 간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등의 행동이다. 즉, 일주일에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시간이 40시간이 안되는 경우다. (당연히 집에서, 또는 카페에서 일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에 재택이나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일하는 경우가 잦다. 그 자체로는 문제될 것이 없으나, 시간 사용의 비중이 급격히 변화한다면 ‘번아웃’의 신호다.

 

#5. 이유

구체적인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현재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이 회사를 선택했던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배움과 경험, 성장을 위해 회사를 선택했다면, 이제 이 회사에서 기대할 수 있는 본인의 성장은 끝났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에, 돈이나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는건 정확한 답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번아웃이라고 부를만큼의 상황에 도달했다면, 명확한 이유를 찾는 것도 무의미하다.

 

#6. 해결

번아웃의 주체가 회사의 직원이라면 아쉽게도 해결책은 없다. 대화를 하고, 문제를 찾아내기 위하여 노력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해결해줄 수 없다. 이 때는 서로 마음상하거나 오해가 발생하지 않게 노력하는게 최선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에게 ‘번아웃’이 전이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정도가 필요한다. 돈이나 즉흥적으로 결정한 다양한 ‘배려’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특히 그러한 해결책들이 회사가 가진 기존의 룰을 벗어난다면 그 결과는 더욱 안좋다.

만약 번아웃의 주체가 대표나 창업자, 사업을 끌어가는 책임자라면, 해결책은 시간 관리인것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본인이 해야하는 역할이 사업가인지, PM인지, 생산자인지 명확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1~2시간 남는다고 정부지원과제를 찾고 지원하면 안된다. 이메일과 페이스북을 열어놓고 모든 연락에 실시간으로 답하지도 말아야한다. 알고지내는 비슷한 처지의 창업자들에게 ‘잘 지내느냐’는 얘기도 불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너무 많은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무익하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하게 처리해야할 일만 처리하고, 일찍 자야한다. 최소한 주말에는 충분히 쉬어야 한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뀔 때는 적절한 리프레시가 필요하다. 피곤한 리더만큼 최악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면서 지키고자하는 몇가지는 다음과 같다.

  • 모임은 ‘정말 필요한 목적’이 있지 않다면 참석하지 않는다.
  • 외부인과의 술자리는 되도록 만들지 않는다.
  • 오전에는 일상적 업무 처리, 오후에는 긴 업무처리, 저녁에는 창의적인 일을 한다.
  • 할 일을 너무 꼼꼼하게 관리하지 않는다. 덜 중요한 일은 잊어버려도 괜찮다.
  • 팀원들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은 맡긴다.
  • 팀 전체 회의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팀 회식도 되도록 하지 않는다.
  • 작은 돈을 아낄 것인가. 이를 위해 투입되는 시간을 아낄 것인가 늘 고민한다.
  • 중요한 일은 미루지 않는다.
  • 내일 해도되는 덜 중요한 일은 내일한다.
  • 책을 읽고, 공부한다. 새로운 것을 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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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5년 동안 느낀점

사실 사업을 하면서 겪는 일들에 대해 얘기하는건 조심스럽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 같은게 있을리 없고, 누군가의 원칙을 따라한다고 실패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적인 목적으로 메모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한번은 써보고 싶었지만, 쉽사리 정리되지 않았다. 생각은 많고,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도 많았지만, ‘난 아직 성공하지 않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아껴두고 싶었다. 그래도 한 번 적어본다.

 

내 손에 있는거만 내꺼다.

인간은 늘 누군가와 스스로를 비교한다. 다니던 회사를 나와 내 사업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회사가 모든 직원들의 성과를 측정하고 1등부터 등수를 정하듯, 스타트업의 영역도 다르지 않다. 난 어느정도 위치에 있는가를 늘 고민하고, 의심하고, 남과 비교하게된다.

남과 비교한다는 것은 나의 준거 집단이 정해진다는 의미도 있다.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처럼 움직인다.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서비스 기획, 무의미한 MOU, 대기업과의 파트너쉽, 각종 정부 인증들, 특허, 친목 모임을 넘어서지 못하는 스타트업 모임들,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그 시간들이 지나고나면 모두가 ‘Moment of Truth’를 맞이한다. 돈을 벌었는가. 돈을 남겼는가.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 이 순간 창업자는 고립되고, 누구하나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지옥 한가운데로 슬쩍 들어가는거다.

그러니 좀 더 냉정하게 내 손안에 있는걸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한다. 유료 고객이 없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면, 난 앞으로 몇 개월간 돈 벌 가능성은 없는거다. 지금 매출이 100만원이라면, 다음달 매출은 잘해야 200만원이다. 지금 서비스 수준이 목표의 50% 수준이라면, 다음달엔 잘해야 55%다. 남들이 받는 투자, 다양한 정부 혜택, ‘운’과 ‘실력’으로 표현되는 많은 기회들은 내 것이 아니다. 잘나가는 사람과 친하다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건 그들의 것이다. 이 사실에서부터 ‘내’ 사업이 시작된다고 본다.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 큰 꿈은 독이다.

내 손에 100원을 들고, 100억을 꿈꾼다면 그건 허상이다. 100원에서 100억으로가는 길은 그 누구도 정교하게 설계할 수 없고, 준비할 수 없다. 100원을 들고 생각할 수 있는 미래는 500원, 잘해야 1,000원이다. 어쩌면 200원일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에서 꿈이 크다는 것은 ‘현실을 모른다’에서부터 ‘대단하다’는 평가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최소한 사업을 한다면, 꿈이 크다는건 대부분의 경우에 잘못된 접근이다.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문제가 생겨난다. 하나는 큰 꿈은 언젠가 ‘허황된’ 망상일 뿐, ‘계획된’ 목표가 아니라는게 드러나게된다. 그 꿈을 보고 합류했던 사람들은 떠나고, 꿈을 꾼 창업자도 슬럼프에 빠진다. 지름길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나에겐 행운이 찾아올줄로 굳게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걸 알게된다. 두번째는 꿈을 꾸는동안 아무 것도 안한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목표에 다가갈 한 걸음을 걸어가지 않고, 책상앞에 앉아 머리만 굴린다는 얘기다. 그리고 덤으로 ‘현실이 하찮아보이는’ 현상도 생긴다.

 

사업은 쉬워야 한다.

모두가 ‘기술’에 집착한다. 정확히는 ‘기술이 있다고 보여지는데’ 집착한다. “비정형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 패턴을 규정하고, 이에 최적화된 정보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적용한다.” 듣고 있으면 보그xx체가 떠오른다. 민망하게도 앞에 있는 저 얘기는 내가 처음 서비스를 만들면서 하고다닌 얘기 중에 하나다. 기술은 개발할 수 있는 사람과 시간이 필요하고, 결국 충분한 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만한 여유가 없다.

사업은 기술을 모르는 부모님도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거창하지 않아야 하고, 작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쉬운 사업으로 돈을 벌어야 기술도 개발할 수 있다. 검증되지 않은 사업모델을 가정하고, 다년간 기술에 집착하는건 연구소나 대학의 역할이다. 사업가는 돈을 벌어야 한다.

 

성공과 실패의 정의도 쉽지 않다.

모두가 성공과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성공은 현재 진행형에 가깝기 때문에 ‘매우 개인적인 목표’가 성공의 정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정의보다는 실패에 대한 정의가 보다 현실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실패는 1) 사업 모델을 통해 수익(매출이 아니라)을 내지 못하는 것, 2) 현금이 바닥나고, 더 이상 돈을 융통하지 못해 월급/세금/4대보험이 밀리기 시작하는 것, 3) 1,2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고, 내년이 되어도 별반 다르지 않는 것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 모든 현상의 결과는 패업, 또는 창업자(대표)의 이탈이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회사의 실패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2~3년동안 만들어온 서비스, 제품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 채 자본금/투자금/대출금을 모두 소진하였고, 이로인해 월급을 줄 수 없어 팀원들이 떠났다. 아직 회사를 운영하고는 있으나, 내년이 된다고 해도 큰 변화가 생기기 어려운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회사는 유지되고 있고, 대표도 바쁘게 일하고 있으나 ‘망할 수 없어 버티는’ 회사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초기 자본금, 기술보증기금 대출금, 여기저기서 빌린 돈들, 밀린 세금과 4대보험료 등이 쌓여있다면 쉽사리 파산을 결정하지 못한다.

#2

초기 비용을 최소화하고, 학생들 또는 친구들, 일부 창업 멤버가 모여 서비스를 만들었다.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일부 개발 비용을 지원받고, 서비스도 어느정도 완성되었으나 그 이상 끌어갈 여력은 없다. 그래서 창업자 중 일부는 복학을 하고, 일부는 취업을 하고, 일부는 다른 일을 한다. 이 경우는 학생들로 구성된 회사이거나, 창업 지원 센터 등 정부 기관을 통해 만나게된 많은 회사들이 해당된다. #1 케이스처럼 회사를 억지로라도 끌고가야할 책임감이 적은만큼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3

#1, #2가 창업자의 Full-time 참여로 회사가 운영된다면 #3 케이스는 회사원, 또는 학생들의 파트타임 참여로 사업이 시작되는 경우다. 정확히는 회사를 설립하지 않고, 팀을 결성하고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서비스가 완성되어 공개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큰 이유는 1) 창업자가 개발을 담당하지 못하고, 2) 그래서 외주 개발사를 통해 개발을 진행하거나, 3) 억지로 끌어온 파트타임 개발자가 정해진 스케쥴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케이스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많을 것 같다.

 

기타 메모들

  1. 하고자하는 ‘영역’은 중요하다.
  2. 하지만 사업의 ‘아이템’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3. 어차피 어떤 ‘아이템’으로 시작하든 비슷한 문제를 경험하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모습으로 망한다. 하지만 ‘영역’은 유지된다. 또는 ‘영역’은 쉽게 바꿀 수 없다.
  4. ‘망한다’의 절반 정도는 제대로된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조용히 사라짐을 의미한다.
  5. 제대로된 서비스를 만든 회사의 대부분은 서비스 런칭 후 1년 안에 성장이 정체하며 사라진다.
  6. 시작은 사람 > 서비스 > 돈이지만, 운영은 돈 > 사람 > 서비스이다.
  7. 시작에서 운영으로 넘어가는 시점은 1년이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2년을 넘지 못한다.
  8. 다시 말해 2년안에 돈을 확보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사업은 불가능해진다.
  9. 돈을 위해선 서비스가, 서비스를 위해선 사람이 필요하다.
  10.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1년안에 서비스를 ‘제대로’ 만들고, 운영해야한다.
  11. 그게 아니면 결국 ‘외주’, ‘감원’, ‘정부 과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버텨야 한다.
  12. 이 쯤되면 처음 시작할 때 시도했던 ‘아이템’은 사라지고, 잘 해야 ‘영역’ 정도를 유지한다.
  13. 초기에 함께 했던 팀원 중 절반정도는 떠났다.
  14. 초기에 알고 지내던 비슷한 단계의 스타트업(창업자) 중 70~80%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15. 대부분의 경우, 창업자가 생각하는 고객은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소수다.
  16. 차별화보다는 기존 서비스와 유사하게 만들어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17. 차별화된 서비스는 1~2년 개발하며 업데이트해도 여전히 마이너로 남을 수 있다.
  18. 디자인과 마케팅은 매우 중요하다.
  19. 개발 완료가 곧 앱스토어 런칭은 아니다. 반대로 앱스토어 런칭이 개발 완료는 아니다.
  20. 수익 모델은 저절로 생기는게 아니다.
  21. AWS는 생각보다 비싸다.

 

쓰다보니 마무리는…

나중에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