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1_오랜만

며칠전 아는 형을 만났다. 대학 때 처음 알게되었고, 오며가며 한번씩 마주치는 정도로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오며가며 마주친다는 것은 서로 곂치는 친구 그룹들이 많아 소식을 접한다는 정도의 의미지 시간을 내서 만나거나,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작년 연말쯤 어느 공유 오피스에 미팅차 갔다가 만났고 그 때부터 다시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나이가 들고 가정이 생기면서, 만나는 사람의 폭은 줄어든다.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기 어렵고, 주말에 약속을 잡는건 사실 불가능하다. 그만큼 누군가를 만나 식사하며 대화하는건 정말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득 연락하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하고, 문자하고, 만나는게 어색하지 않다. 그 옛날 우리가 얼마나 가까웠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때 서로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쳤고, 대화를 나눴고, 술을 마셨다는 어렴풋한 사실만 있으면 충분한 것 같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잘 지내냐는 문자 하나로 충분한것 같다. 나도 가끔 뜬금없는 전화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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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요식업

이 형은 요식업에 종사했다. 소위 ‘청담동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했고, 가로수길에 2호점도 열었다. 나도 간간히 들러 식사했고, 메뉴 구성이나 맛도 훌륭했다. 캐주얼 다이닝에 가까웠고, 함께 간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 나 역시 생각날 때마다 찾고는 했다. 갈 때마다 자리는 만석에 가까웠고, 레스토랑은 점원 분주함과 손님의 대화 소리로 활기찼다.

결론적으로 이 형은 10년간 운영하던 레스토랑을 접었다. 늘 사람이 많아보이는 것 같지만, 단골이 많은 것 같지만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특성상 ‘매일 점심/저녁으로 찾는’ 단골이 생겨날 수 없다는 점, 임대료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 직접 요리를 하지는 않지만 365일 오픈 준비부터 마감까지 직접 챙길 수 밖에 없다는 점 등이 이유였다. 너무 지쳐있었고, 멈춰야할 때라고 했다.

스타트업도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회사의 소식들, 대표이사의 자신감 넘치는 인터뷰 기사들, 일과 생활의 절묘한 균형을 뵤여주는 매력적인 인스타그램의 사진들을 통해 알 수 있는건 없다고 말이다. 모든 사장님들은 오늘도 남모르는 고민과 풀리지 않는 문제들 속에 파묻혀지낼게 분명하다.

인생을 살면서는 멈춰야할 순간이 있다. 멈추는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속력을 줄이고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인생 무슨 일 생길지 모르는데, 매순간 에너지를 100% 사용하면서 살면 안된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그런 대화를 나눴다. 눈 앞에 절벽이 보이는데, 속력을 줄이지 않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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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따릉이

이 날은 비가 많이 왔고, 이 형은 강 건너에서부터 양재동까지 따릉이를 타고 왔다. 그러면서 따릉이가 얼마나 편리한지, 저렴한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동의한다. 정부에서 일상의 편리함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 중에 따릉이만큼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서비스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대화는 구독 서비스로 넘어갔다.

넷플릭스, 애플 뮤직, 아이클라우드, 구글 드라이브, 오피스365, 인터넷, 휴대전화 등 우리가 매달 내고 있는 서비스 이용료를 하나씩 열거했다.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메일침프, AWS, 스케치, 제플린, 블랙베리 Hub, 등록과 해지를 반복하는 Bear, 에버노트 같은 생산성 앱들도 하나씩 얘기했다.

소유하거나 빌려쓰던 시기에 ‘원하는 물건’을 내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꽤나 자연스러웠다. 굳이 ‘결핍’이라고까지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원하는 물건 대부분은 나에게 없었다. 소니 바이오 노트북, 캐논 5D 같은 고가의 장비도, 각종 장난감이나 게임기, 필기 도구들도 그랬다. 없으면 친구 것을 빌리거나, 친구 집에서 같이 하거나, 중요한 날 선물로 갖고 싶다고 졸랐다. 내 아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어떻게 변할까 궁금하다. 매달 정기 결제로 이루어지는 각종 서비스 계정, 통신 요금, 단말기 할부, 지금은 알 수 없는 수많은 구독 서비스들을 모두 더하면 어떻게 될까? 한 달에 적지 않은 금액이 결제될테고, 이 결제는 오롯이 내 계정에서 이루어져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친구들간에 느끼는 상대적 차이가 100만원짜리 장비가 아니라 1만원짜리 계정에서 일어날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신용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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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얘기를 하다보니, 사들고 온 술 한병을 비웠고, 서로 적당히 취했다. 그 형은 카카오택시를, 나는 카카오드라이버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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